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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토 모모코 / SETO Momoko
벨기에, 프랑스
2025
77분
비전과 풍경
민들레에서 떨어져 나온 네 개의 씨앗은 핵폭발로 파괴된 지구에서 간신히 살아남아 우주로 던져진다. 별과 행성을 떠도는 네 친구는 새로운 터전을 찾기 위해 모험을 시작하고 다양한 동물들이 그 여정에 함께한다. 인간의 존재와 언어가 사라진 후 식물과 동물과 대지와 우주가 각자의 세계가 있음을 보여주는 아름답고 사색적인 애니메이션. 2025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상영되었다.
<행성들>은 타임랩스 촬영과 자연 현상을 결합해 생태계의 작은 존재들을 응시하도록 이끄는 ‘행성 시리즈'(2008년 <Planet A>, 2011년 <Planet Z>, 2014년 <Planet ∑>, 2017년 VR <PLANET ∞>)를 만들어 온 세토 모모코 감독의 첫 장편 영화다. ‘행성 시리즈’로 이미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 크리스털 어워드를 수상한 바 있는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타임랩스 사진, 실사 영상, 3D 애니메이션, 로봇공학 등 다양한 기술을 활용해 생태계와 비인간 존재들에 대한 매혹적이면서도 성찰적인 비전을 제시한다. 영화의 오프닝에서 우리는 별빛이 흩뿌려진 듯한 우주의 풍경을 본다. 그러나 곧 그것이 한 송이 민들레의 씨앗, 즉 과수(冠毛)임을 알게 된다. 이어 핵폭발이 일어나고, 관객은 한 행성을 떠난 민들레 홀씨들이 여러 행성 사이를 떠돌다 결국 한 행성에 정착하는 긴 여정을 따라가게 된다. <행성들>에서의 시야는 익숙한 관점보다 훨씬 광대하거나, 때로는 극도로 미시적이다. 타임랩스는 시간을 압축하고, 하이퍼 슬로 모션은 시간을 펼쳐 놓는다. 압축과 확장의 리듬 속에서 드러나는 것은 생명의 흐름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리듬, 그리고 존재의 공명이다. 이 작품은 서사적 영화의 반대편에서 시간과 시점을 조작하며, 작고 사소해 보이는 생명들에게 새로운 시선을 제시한다. 그들의 생존과 재생을 지켜보게 하고, 주변의 미세한 존재들에 대한 공감과 이해를 일깨운다. 민들레 씨앗들이 민달팽이의 이마에 머물러 이동하는 장면에서 이토록 깊은 감동을 받을 줄은 몰랐다. 민들레 한 송이 안에는 그 작은 홀씨 몇 개보다 훨씬 더 많은 이야기와 여정, 움직임, 그리고 시간이 담겨 있을 것이다. (프로그래머 황미요조)
세토 모모코 / SETO Momoko
도쿄 출신 세토 모모코는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센터(CNRS)에서 영화제작자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2021년에는 과학영화 감독에게 주어지는 CNRS 크리스탈상을 받았다. 시적이고 생태적인 오디세이인 첫 장편영화 <행성들>은 2025년 칸영화제 비평가주간에서 상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