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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민철 / WANG Mincheol
한국
2025
112분
비전과 풍경
자신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존재를 돌본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람에게 곁을 주지 않는 야생동물을 돌보기 위해 희생을 감내하며 시골의 산골짜기에서 젊은 날을 보내는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단지, 우리가 잠시 머무는 곳>은 태어나서 지금껏 1평 남짓의 철창 안에서 살고 있는 사육 곰에 관한 이야기이자 그곳에서 일하는 네 여성에 관한 이야기이다. 2025년 부산국제영화제 다큐멘터리 관객상 수상작.
자신의 삶을 어딘가로 끌어가고 나아갈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자유가 누구에게나 주어질까. 시스템이 방치하고 파괴한 누군가의 삶은 언제나 그것을 외면하지 못하는 자가 책임진다. 그러니까 ‘구조’란 단순히 구조하는 행위로 끝나지 않는 법이다. 철장 속에 갇혀 평생을 사육당한 야생 곰은 다시 야생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그들의 삶은 온전히 누군가의 노동과 돌봄으로 유지된다. 그러니 곰 생추어리를 만드는 과정을 따라가던 카메라가 어느새 그 돌봄을 제공하는 이들의 손길을 훑으며 내면을 들여다보게 되는 건 필연이다. 돌봄이 전부인 듯 보이는 네 명의 활동가들의 삶에서 멀리 떨어지면 그 안에 각각의 고민을 품은 개인이 보인다. 활동복을 벗고 일상을 보내는 활동가들의 모습과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다시 일상을 누리는 곰의 모습이 병치될 때면, 우리는 모두 어떠한 속박 속에 갇히지 않을 자격이 있는 개별적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화천을 떠나는 길이 긴 호흡으로 보여질 때 그 길이 또 다른 어딘가로 향하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그것은 곰이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 손수현, 서울동물영화제 집행위원)
왕민철 / WANG Mincheol
다큐멘터리를 만든다. 촬영감독으로 <On the Rim of the Sky>(2014), <시 읽는 시간>(2016), <봉명주공>(2020)에 참여했다. 연출작으로는 <동물, 원>(2018)과 <생츄어리>(2022)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