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NLINE

트레일러 정보가 없습니다.
로베르 브레송 / Robert BRESSON
프랑스, 스웨덴
1966
96분
애니멀 턴:동물-영화사
당나귀 발타자르는 평생 여러 인간들을 만난다. 어떤 이는 친절하고, 어떤 이는 잔혹하지만, 모두 발타자르의 이해를 넘어서는 욕망에 의해 움직인다. 발타자르는 양 떼와 개, 새 들로 둘러싸여 생을 마감한다. 로베르 브레송의 독창적인 구도, 사운드, 내러티브 접근은 알레고리와 타자성 그리고 동물과 인간, 영화와 동물에 관한 깊은 탐색을 만들어낸다.
<당나귀 발타자르>의 당나귀는 종종 종교적 희생의 상징, 혹은 인간의 비참함과 타락의 은유로 해석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관찰들은 이 영화가 제시하는 동물의 구체적인 존재감과 감각, 그리고 인간과 동물 사이의 이해 불가능성을 통해 드러나는 윤리적 감각을 지나친다. 발타자르의 울음과 얼굴은 종종 인간의 이해보다 먼저 도착하거나 더 오래 머문다. 그의 몸짓은 의미의 연결을 중단시키며, 인간의 욕망과 폭력 사이를 떠돌지만 결코 어떤 상징 안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발타자르가 서커스단에 도착했을 때 인간의 시선이나 중재를 제거하고 발타자르와 동물들의 시선교환만이 보여진다. 동물들의 얼굴과 눈이 클로즈업된다. 이들이 서로를 본다는 것, 서로에게 주의를 기울인다는 사실 외에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영화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이 시간을 동물에게 할애함으로써, 인간만이 유일한 주체가 아님을, 인간 시선만이 유일한 시선이 아님을 보여준다. 이것이 이 영화의 윤리다. 아르놀이 유산을 물려받은 기쁨에 파티를 벌이는 장면에서, 묶여 있는 발타자르는 폭죽 소리에 얼굴을 움직이며 놀란다. 두 번은 놀라고, 그 다음부터는 동요를 멈춘다. 영화는 폭죽이 아니라 그 얼굴을 비춘다. 폭죽의 소리는 인간의 환희가 아니라, 이해할 수 없는 공포의 소리, 타자로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세계의 울림으로 제시된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발타자르가 죽어갈 때 들리는 양떼와 개들의 움직임과 소리는 브레송이 동물적 존재에게 부여한 구체성과 존재성을 다시 한번 확인하게 한다. (프로그래머 황미요조)
로베르 브레송 / Robert BRESSON
프랑스의 감독 로베르 브레송(1901-1999)은 <사형수 탈주하다>(1956), <잔다르크의 재판>(1963) 등의 작품으로 영화사에 큰 영향을 끼쳤다. <당나귀 발타자르>는 1966년 『카이에 뒤 시네마』에서 그해 최고의 영화로 선정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