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참혹한 위기 이후 우리는 공동체의 가치와 정의를 재구성하고 있습니다. 사회 곳곳의 목소리를 드러내며, 재난을 기억하고, 연대의 가치를 되새길 수 있다면, 우리는 위기를 새로운 가능성으로 바꾸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목소리에, 재난 속에, 연대 안에 동물이 있습니까. 팬데믹의 공포와 기후위기의 현실을 체감하는 지금, 우리의 위기의식은 인간-동물 관계에 대한 성찰과 전환으로 이어지고 있을까요?
동물권 운동과 사회적 인식은 분명히 확장되고 있지만, 동물 착취의 범위는 줄어들지 않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동물복지 계란을 사는 것이 쉬워진 만큼 육류 소비 역시 더 저렴하고 간편해졌습니다. 반려동물 문화는 확산되었지만, 그 변화가 동물을 대하는 제도적, 법적, 정치적 기반에 도전하진 않습니다. 환경과 재난에 대한 공포는 커지지만, 여전히 동물권은 정책의 중심에 서지 못합니다.
동물권은 단지 동물을 ‘좋아하는’ 사람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기후위기, 공공보건, 생태계 파괴, 반민주적 기업의 횡포, 약자와 노동의 권리 등 수많은 문제와 동물권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동물권은 우리 모두의 위기의 해결책과 연관된 공통의제이며, 따라서 동물은 이 모든 문제와 관여된 주권자여야 합니다.
동물 없이 새로운 세계가 가능할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인간만의 세계가 아니라, 다종(multispecies) 공동체입니다. 새로운 가치들과 희망으로 상상하는 세계에서 동물은 단지 보호나 애호의 대상이 아니라, 공동 구성자이며, 참여자이며, 행위자로서 반드시 포함되어야 합니다.
제8회 서울동물영화제는 말합니다.
동물이 인간의 결정과 행위에 영향을 주고, 공동체의 구성원으로 참여하는 세계ㅡ 그러할 때 비로소 세계입니다.
* 영문 슬로건인 "The World That Therefore We Become"는 데카르트의 "I think, therefore I am(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인간중심성을 비판하며 데리다가 주창한 "The Animal That Therefore I Am(나는 동물이다, 고로 존재한다)"를 전유해 더욱 확장시킨 표현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