촬영 현장의 노동권과 동물권은 같이 변화되어 나가는 문제인 것 같아요.
영상 촬영 현장은 완벽한 장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스태프가 땀 흘리는 곳입니다. 자연스럽게 긴장감이 높아지고, 현장에 온 비인간 동물 연기자도 그 분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때로는 더 급한 사안에 밀려 제대로 돌봄 받지 못하기도 하고요. “영상 업계는 모두 왜 이렇게까지 무리를 하는 걸까요?” 류우영, 김예지 감독은 자신도 자유롭지 않은 질문을 던집니다. 서로를 함부로 대할 만큼 무리하지 않아도 좋은 작업이 나올 수 있다고 믿는 두 사람은 모두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프프프’(fff, feminist filmmakers forever)의 스태프이기도 합니다. 동물과 영상 작업을 그 누구보다 사랑하는 열정적인 창작자들과 동물 출연 영상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김예지 감독님, 류우영 감독님 오늘 나와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로 어떤 작업을 하시나요?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
류우영 저는 영화로 처음 영상 작업을 시작했고, 지금은 광고나 패션 필름 쪽 일을 한 지 오륙 년 되었어요. 친구들과 스튜디오를 내서 사업을 하다가 최근에는 회사에 소속된 광고 영상 감독으로 활동 중입니다.
김예지 저는 다른 일을 하다 영상 쪽으로 넘어온 케이스에요. 지금 하는 일 위주로 소개해 드리자면 그간 영상 프로덕션에서 다큐멘터리를 베이스로 해서 다양한 작업들을 했지요. 광고가 될 때도 있고, 영화가 될 때도 있고, 일반적으로는 인터뷰 콘텐츠가 많습니다.
그리고 종종 영화를 찍어요. 스스로는 영화를 취미로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일로 인식하면 제가 즐거운 일들만 찾아가지 못할 것 같아서요. 주중에는 영상 일을, 주말에는 영화를 찍는 식이에요.
광고, 패션 필름이라 하면 영화나 시리즈물과 비교해 뭐가 다를까요?
류우영 일단 촬영 기간 자체가 다르겠죠. 아무래도 하루 패션 필름도 마찬가지고 하루에 압축적으로 찍고 아주 길어봤자 이틀 정도 하는데 시리즈는 최소 몇 달 단위로 현장이 운영되니까, 그로부터 여러 차이가 생기는 듯해요.
선뜻 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오늘 어떤 마음으로 오셨나요?
김예지 저는 평소에 동모본 활동에도 관심이 있어서 오히려 만나 뵙고 말씀 듣고 싶기도 했고, 또 저부터가 다른 현장에선 어떤 일들이 일어나고 있나, 궁금하기도 했어요. 저도 제가 경험한 곳밖에 모르니까요.
약한 존재가 배제되기 쉬운 환경
두 분 다 ‘여성 영상인 네트워크 프프프’(이하 ‘프프프’)의 스태프로 활동하고 계신 거로 알고 있어요. 앞서 인터뷰 한 서시온 촬영감독, 송민주 연출자님도 ‘프프프’ 멤버셨는데요. 어떤 곳이기에 이렇게 동물권에 공감하는 창작자분들이 모여계신지 궁금합니다.
류우영 ‘프프프’는 2020년에 저를 포함해 몇몇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영상 업계에서 여성들 처지가 쉽지 않은데 그걸 뾰족하게 대변해 주는 단체는 없는 것 같았거든요. 물론 얕게는 있었지만, 여성 영상인들을 위한 구체적인 발판을 만드는 장은 없는 것 같아서 무작정 인스타로 사람 모으고, 그렇게 시작했고 기수 별로 운영되고 있어요. 어제 6기 마무리하고 왔는데 지금은 꽤 많은 분이 같이 모여 워크숍도 열고, 협업 프로젝트도 하고, 그냥 모여서 즐겁게 놀기도 하고, 그런 네트워크 중심의 모임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김예지 저는 만들어 주신 장에서 잘 놀다가 3기쯤 스태프로 합류했어요. 사실 촬영장은 뭐랄까 기본적으로 좀 마초적인 분위기가 있어요.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그 무렵 제가 다녔던 현장은 그랬어요. 그런 분위기에 질려있던 차에 ‘프프프’에서 협업 프로젝트를 하면서 여성들로만 꾸려진 촬영 현장을 처음 경험했고, ‘프프프’를 통한 프로젝트들을 계속하면서 다른 현장도 많이 경험했어요. 다른 촬영 현장에 있을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있단 걸 안다는 것 자체가 힘이 됐죠.
마초적인 분위기라는 게 대강 상상은 가지만, 구체적으로 어떤 건가요?
김예지 일단 촬영 현장이란 게 하루 안에 반드시 찍어야 할 컷들이 있기 때문에 굉장히 밀어붙이면서 가요. 그 과정에서 소리를 막지르면서 사람들을 다그치며 가는 일들이 있기도 하고요.
류우영 그렇죠. 현장은 어떻게 보면 큰 장비를 컨트롤 하는 곳이거든요. 대부분 남성들이 담당하고요. 그들이 크고 중요한 장비를 다루는 작업 환경을 뚫고 나가는 방식은 윽박지르고, 위계적인 군대 문화로 통제하는 방향이 될 때가 많아요. 부하 스태프들이 장비를 정확히 가져다 놓지 않으면 바로 욕이 날라간다거나 하는 분위기… 그런데 사실 그런 폭력적인 말을 사용하지 않아도 각자 역할에 대해서 제대로 인지하고 있으면 잘할 수 있는 거거든요. 그렇게 할 수 있다는 걸 기성 작업자분들은 그냥 모르고 계신 채 익숙한 방식대로 하시는 것 같아요.
김예지 미디어 업계 전반이 그냥 그 수직적인 분위기 속에서 만들어져 온 게 있는 듯해요. 예를 들어서 촬영팀이나 조명팀이나 이런 쪽은 어느 정도 도제식 교육 시스템이 기반이 되거든요.
류우영 진짜 짧은 시간 안에 찍어야 하는 컷은 정해져 있고, 1시간 초과할 때마다 그게 다 돈이고, 근데 다들 욕심은 또 있고 하고 싶은 것들은 있고, 장비는 크고 위험하고, 현장은 복잡하고 하다 보니 그렇게 문화가 형성되어 온 것 같아요.
김예지 근데 이게 꼭 당연한 건 아니거든요. 그 방식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도 충분히 좋은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걸 ‘프프프’에서 만난 분들과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게 저한텐 뭔가 관점의 전환이었어요.
류우영 이야기하다 보니까 이 마초적인 분위기가, 기본적으로 그냥 사람 스태프들한테도 험한 환경이거든요. 모델들도 나름대로 신체적이고 정신적인 어려움을 감수해야 하고요. 그런 환경에서 동물 보호나 여성 스태프에 대한 정당한 대우 같은 걸 고민하기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약한 존재가 배제되기 쉬운 환경이랄까.
광고 현장의 동물들
광고에서는 주로 어떨 때 동물이 등장하나요?
류우영 광고는 짧은 시간 내에 메시지를 전달하는 게 중요하죠. 영화라면 캐릭터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데, 광고는 몇 초 내로 이 인물을 보여주려다 보니 정형화된 이미지로 접근하는 경향이 있어요. 예컨대 여성을 뻔한 성역할로 보여준다던가요. 동물을 쓸 때도 짧은 시간내에 인상적인 표현을 하려는 의도가 있는 경우가 많죠.
실제 촬영하셨던 경험이 있으신가요?
류우영 많지는 않은데요. 제가 연출했던 작업 중에는 광고에 동물 강아지가 나오는 컷이 있었어서 네 업체를 통해서 강아지 두 마리를 모셨었고요. 생리대 광고였어요. ‘뽀송해진다’를 표현하기 위해 축축하게 젖어있는 강아지와 뽀송하고 해맑은 강아지를 표현해야 하는 것이었는데, 광고주의 요청으로 촬영했죠. 무난하게 끝났지만 사실 내키진 않았어요. 촬영 환경이 냄새 나고 꿉꿉하고, 좁은 공간에 사람도 많이 모여 있다보니 동물에게나 사람에게나 스트레스 받는 환경이거든요.
광고는 클라이언트의 직접적인 영향력이 크네요. 광고주들이 대중의 동물권 감수성에 대해서도 눈치를 보면 좋을텐데요.
류우영 ‘우리 동물들 다 CG로 찍었다’ 그런 표시하는 게 좀 하나의 마케팅 포인트로 자리잡거나 한다면 또 사례가 많이 생길 것 같긴해요. 아무래도 대체로 나이대가 있는 분들이 의사결정자라는 한계가 있는 것 같지만요.
광고 현장의 동물은 어떻게 와서 촬영하고 어디로 가나요?
류우영 동물을 캐스팅하는 과정은 사람 모델 캐스팅과 굉장히 흡사해요. 영화나 드라마는 연기를 보고 이제 캐릭터에 맞는 배우를 캐스팅하겠지만 광고는 이미지가 훨씬 중요하거든요. 이제 광고주가 원하는 이미지에 맞춰서 키, 머리길이나 분위기, 이런 걸 이미지 모델 에이전시에 전달하면 추천 리스트가 와요. 동물도 ‘장모종’, ‘단모종, ‘크기는 컸으면 좋겠다’, ‘잘 웃었으면 좋겠다’ 이런 식의 내용을 전달하면 사진과 리스트, 몸무게, 현재 털 상태가 담긴 목록이 오는 식이죠. 현장에는 담당자 분이 같이 와서 배변이나 식사 등 컨디션을 케어해주시고요. 보통 대기실에서 켄넬에 들어가 기다리는데 대기 시간이 길어지는 게 개에게도 스트레스일 거에요. 때가 되면 나와서 저희가 요구하는 행동을 해줘야 하는데, 그게 잘 안될 때는 동행하신 담당자 분이 지도해주시기도 하고요.
확실히 영화 촬영현장 사례와는 다르네요. 짧은 시간 밀도있게 촬영해야 하고 사람도 일종의 소품 같아요. 그 자체가 광고 영상의 특성이어서 영화와 같은 잣대를 댈 수는 없을 듯해요.
김예지 근데 광고가 아니어도 대부분의 촬영장에서 아직까지는 동물을 소품에 가깝게 대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 않은 현장을 경험했던 게 동물 입양 플랫폼 ‘포인핸드’ 매거진 촬영이었는데, 여기선 동물에게 완전히 초점을 맞추는 촬영을 하니까 환경이 달라질 수 밖에 없더라고요. 포인핸드에선 이 동물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촬영을 하는 거니까 어떻게 하면 이 친구가 가장 편안한 환경에 있을 수 있는지 고민하고, 보호자가 곁에 있어주거나 동물이 편안해 하는 곳에 직접 찾아가서 촬영을 한다든가 하기도 했죠.
체온을 가진, 고통을 느끼는 모든 생명
두 분은 어떻게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생기셨나요?
김예지 저는 명확해요. 웬디라는 강아지를 만났거든요. 저는 친구랑 살고 있는데 둘이 동물을 입양하고 싶어서 임시 보호를 몇 번 해보던 차였어요. 그때 그냥 가볍게 우리 개를 입양하면 이름을 ‘웬디’로 하자고 하다가 그 며칠 뒤에 ‘웬디’라는 강아지가 보호소에서 대기 중이라는 소식을 봤어요. 그런데 웬디가 좀 아픈 개였어요. 운명처럼 데려와서 같이 살붙이고 털 느끼면서 살다보니 자연히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생겼어요. 진돗개가 특히 처우가 안좋잖아요. 자연히 개의 처우 개선에 대해 고민을 더 많이 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농장 동물들이나 야생 동물들도 저에게 좀 더 체온을 가진 존재로 느껴지더라고요.
류우영 저도 반려동물이 있어요. 13년 정도 고양이랑 같이 살고 있는데, 물론 감정적인 부분도 있지만 어느날 어떤 동물은 귀여우니까 존중받고, 어떤 동물은 음식 취급받는 게 논리적으로 모순적이라 느꼈어요. 관련 된 철학책 같은 것들을 읽다보니 자연히 납득이 되더라고요. 예컨대 ‘고통을 느낄 수 있는 존재’가 있다면 우리가 그 고통을 외면해서는 안되는 거 아니느냐는 설명을 읽었던 기억이 나네요. 그럼 식물은 안불쌍하냐 식물도 생명인데, 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 될 수 있겠구나 싶었어요.
두 분이 동물구조단체인 위액트의 반려동물 입양 인식 개선 캠페인 영상 작업도 하셨다고 들었어요. 저도 예전에 SNS에서 봤던 기억이 있는데, 인상적인 사례라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합니다.
류우영 위액트에 지인이 있는데 제가 동물권에 관심도 있고 영상도 찍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그래서 제안받고 재능기부 형식으로 진행했고요. 제가 기획과 시나리오도 담당했는데 위액트 분들의 번식장 실태에 대한 설명을 듣고 정리했죠. 이렇게 폭력적이고 충격적인 상황인데 왜 사람들은 여전히 진열장에 있는 강아지를 사는가라는 질문으로 시작했어요. 제 답은 그 이면에 대해서 상상을 하지 못해서라는 것이었고, 그래서 좀 자극적이지만 어린아이의 순수한 질문을 통해 진실을 솔직하게 드러내보자는 생각으로, 아이가 ‘강아지는 어디서 왔어?’라고 물으면 잔혹한 현실을 답하는 스토리로 진행되었습니다. 촬영은 위액트에서 보호하고 있는 강아지가 와서 무리없이 잘 찍었어요.
김예지 저는 후반 작업에 참여했어요. 대단히 폭력적인 내용인데 이를 시각적으로는 자극적이지 않게 인형을 활용한 애니메이션으로 잘 풀어낸 영상이잖아요. 그래서 보는 건 힘들지 않게, 대신 메시지는 정확하고 확실하게 전달받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작업했죠. 그런데 솔직히 말하자면 사람들이 아직도 이 사실을 모른다는 게 답답하다는 마음도 한 켠에 있었어요. 제 주변에도 여전히 강아지를 사는 분들이 있거든요. 이런 내용이 더 많이 가닿아서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저변이 되었기를 바랄 뿐이에요.
말씀대로 좀 더 멀리까지 가닿지 않았을까 싶어요. 사실 현장의 참혹함을 전달하는 데에 보기 힘든 이미지가 많이 사용되기도 하잖아요. 이 영상은 어린이까지 누구나 볼 수 있으면서도 적나라하고 솔직한 내용이 담겨있어서요.
류우영 그런 고민은 늘 있는 것 같아요. 이 영상도 사실 위액트에서는 조금 더 공격적인 이미지를 쓰는 건 어떻냐고 제안하기도 했었어요. 제가 이전에 비건 브랜드의 동물 실험 반대 캠페인 영상을 작업한 적도 있는데, 결과물이 나왔을 때 너무 예쁜 영상을 만들어버린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한켠 들더라구요.
무리하지 않는 촬영 현장 만들기
오늘 현장 문화 이야기가 많이 나왔는데, 이 업을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실까요?
류우영 음… 촬영하는 사람들이 뭔가 다 같이 조금 무리를 조금씩 다 해요. 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우리가 오늘 다 같이 무리해서 막 밤도 새고, 좀 시끄럽게 민폐도 끼쳐가면서 작품을 만들 때 솟아나는 아드레날린이 있나 봐요. 사람들이 거기에 약간 중독이 되나 봐요. 촬영 현장이라는 게 광고며 영화며 다 비슷할 것 같아요. 이 업계 자체가 무리와 혹사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 괴로워하기도 하고 그런 분야가 되어 버린 느낌?
저도 프로젝트 하나하나가 소중하고, 제 경력이고, 이걸 해내야 생존할 수 있단 압박이 있어요. 그렇지만 이런 환경 속에선 동료를 케어하기가 쉽지 않은 게 당연하지 않나 싶어요. 광고주의 불편한 요구에 대해 타협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고민도 마찬가지고요. 현장에서의 노동권, 창작자의 권리, 동물권이 서로 다른 문제가 아니라 같이 변화되어 나가는 문제인 것 같아요.
김예지 그래서 저는 외부에서 좋은 목소리를 내주는 사람들이 있는 것도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럴 때 현장에서도 ‘이렇게 찍지 말자’고 이야기하기가 한결 수월해져요. 사실 그런 이의를 제기할 때마다 커리어에 불리할 수도 있다는 생각할 수밖에 없는데 동모본 같은 활동이 있으면 도움이 되죠.
창작자가 할 수 있는 시도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생각난 사례가 있는데, 어떤 동시 녹음 작업자 분은 자기가 기준을 세워놓고 그에 부합하는 작업이면 작업비를 좀 깎아준다고 하더라고요. 예컨대 여성에 대한 이야기면 작업비를 깎아주고, 동물 촬영 가이드라인을 다 지켰다고 하면 또 깎아주고, 이런 식으로? 좀 독특하지만 이런 방식을 시도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창작자들이 만드는 규칙이나 기준이 사실 정말 효과적일 것 같아요.
김예지 어린이가 출연하는 영화를 많이 작업한 윤가은 감독이 촬영할 때 스태프들과 공유하는 어린이 배우 촬영 수칙 같은 걸 갖고 계신다고 하더라고요. 그 내용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예를 들면 “어린이 배우를 프로배우로 존중하기”, “머리 정리 등의 신체 접촉을 할 때는 미리 배우에게 알려주고 하기”, “어린이 배우들 앞에서 스태프들이 욕하지 않고 뭔가 모범을 보일 수 있는 행동을 하기”, 그리고 “어린이 배우에 대해서 외모 칭찬을 하지 않기” 같은 내용인데, 카라에서 만드신 가이드라인도 만약 연출자들이 스태프들에게 이야기해서 한 번 촬영 들어가기 전에 공유하는 방식으로 활용될 수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아 그리고 저희 협업 프로젝트에서 고양이가 주인공인 단편 영화가 있었는데, 그냥 고양이 인형으로 대체를 했거든요. 그리고 자막에 ‘어떤 동물도 해를 입지 않았습니다’ 자막을 띄웠어요.
고양이가 안나오는 고양이 영화, 너무 궁금해요.
류우영 그니까 사실은 고양이를 찾아다니는 게 주된 내용이었어요. 그래서 고양이가 전반부에 안나오다가 마지막에 나오는데 그때 인형이 싹 등장하는. 장르랑도 잘 어울리는 선택이었는데, 이렇게 연출적으로 풀기 위한 고민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함께함의 희열과 관객의 뒷모습
듣다 보니 궁금해진 건데, 이렇게 무리해야 하는 일을 그 무리한 환경을 바꿔나가는 노력까지 하며 계속해 나가는 동력과 애정은 무엇인가요?
김예지 촬영 현장이 진짜 힘들거든요. 특히 단편 현장들은 뭐랄까 12시간을 초과하지 말자고 정해도 잘 안 지켜지기도 하고 새벽까지 촬영하는 경우가 아직도 있어서 정말 힘들어요. 이제 끝나고 나면 진짜 한동안 나는 영화 촬영 안 한다고 하는데, 또 그게 작품으로 나와서 사람들 앞에 보일 때 약간 찡한 마음이 들어요. 관객들이 집중해 봐주는 뒷모습이 저는 너무 좋더라고요. 보는 분들이 그렇게 집중해서 보는 모습,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메시지를 읽어주는 것 때문에 계속 이 작업을 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류우영 저도 비슷한 것 같아요. 현장에서 완벽한 장면을 찍기 위해 각자 역할을 나누잖아요. 누구는 조명을 담당하고 누구는 영상을 담당하고, 나는 전체적인 뭘 보고, 모두가 이렇게 뭘 하나씩 맡아서 하다가 다 같이 힘을 합쳐 오케이 사인이 나올 때 희열이 좀 있거든요. 물론 일을 하면서는 그게 이제 대단히 희열처럼 느껴지지는 않는데, 단편 영화 찍을 때 다 같이으쌰으쌰 했던 그 맛에 빠져서 시작했던 것 같아요. 지금은 하다 보니까 하고 있어요.(웃음)
김예지 일로 하는 일과 개인 작업 간에 좀 차이가 있는 것 같긴 해요.
마지막으로 이 인터뷰는 아마 영상을 집중해서 보는, 또 동물이 다칠까 봐 조마조마한 마음도 한켠에 있는 관객, 시청자분들께서 읽게 될 텐데 혹시 그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을까요?
김예지 현장에서 스태프 한 명이 가지는 목소리보다 시청자가 외부에서 내주는 목소리가 더 큰 힘을 가질 수 있거든요. 그래서 그런 목소리들이 지금 현장을 변화시키고 있다는 거 알아주셨으면 좋겠어요.
류우영 맞아요. 이런 변화도 있고, 현실의 압박 속에 완벽한 선택은 못하더라도 계속 고민하는 창작자들이 있단 게 위안이 되면 좋겠네요. 계속 힘을 내서 활동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기 획 | 동물권행동 카라, 오늘의풍경
에디터 | 백희원
디자인 | 신인아, 김헵시바
사 진 | 임효진
미디어 동물권 이슈 원포인트 뉴스레터